사회적경제 칼럼

갑자기 불어온 ESG 바람, 어떻게 맞이해야 하나?

요즘 업종에 상관없이 다들 ESG가 이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ESG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누가 왜 ESG 바람을 일으켰는지이다. ESG(Environment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구조)는 코피 아난(Kofi Annan)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던 2006년에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라는 기구를 만들고 투자 시 ESG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창하면서 시작되었다. ESG 이슈를 투자 분석과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해야 하고 투자 대상 기업이 ESG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다. 유엔은 국가들이 모여서 글로벌 아젠다를 논의하는 국제기구인데, 이런 곳에서 투자자들에게 투자 기준에 대해 권고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배경에는 정부의 굼뜬 움직임으로는 지구를 살리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증가하는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를 막아보자고 선진국 정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1997년 쿄토의 정서는 기대와는 달리 별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만료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에서는 필요성을 크게 외쳐놓고, 돌아가서는 이런저런 정치적 입장과 시급한 안건들에 밀려, 각국의 정부는 중요하긴 하지만 단기적인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환경 문제를 미루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물론 코피 아난이 ESG 얘기를 꺼냈을 때 투자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UN PRI가 신설될 때 1,750개 투자사가 PRI의 투자원칙을 지키겠다고 서명했다고 하니 그 사전 작업이 얼마나 계획적으로 꼼꼼히 이루어졌는지 짐작이 가는데, 금융시장에 이러한 변화가 갑자기 일어날 경우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2020년부터 PRI를 본격화하기로 약속했다. 15년의 준비 기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사이 선진국의 금융사들과 자산가들은 ESG 기반의 투자를 하기 위한 동인을 연구하고 기준을 마련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만 국내의 기업에는 그 과정이 잘 보이지 않아서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설마 자본주의가 그렇게까지 자본이 안 될 것 같은 가치를 좇겠냐는 의구심도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ESG 경영과 ESG 투자의 바람은 2018년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이 기업 CEO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운용자산이 6조 달러(6200조원)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기업 CEO들에게 “재무적 성과를 넘어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성취할 수 있는 경영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며 “이러한 목적의식이 없으면 상장, 비상장 따질 것없이 기업들은 그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를 고민하던 이 시기에, 기후 관련 재무 정보 공개 권고안(TCFD, 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을 따르겠다고 공표한 금융사들이 이미 150곳이 넘었고, 이들의 운용자산 총액은 82조 달러를 상회했다. 블랙록의 연례 서한은 2019년도에는 기업의 목적에 대해 한층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등 ESG 전반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2018년에 지속경영 임원 조직을 신설하고 사회적 가치와 지속경영을 강화하기 시작한 SK하이닉스로서는 이러한 흐름을 타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리고 ESG라는 화두가 점점 달아오르는 작년 9월에 ESG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움직임만으로 보면 대단히 타이밍을 훌륭했고 앞서 나가는 모양새였는데, 국내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그런 것이지, 글로벌기업과 비교해봤을 때에는 겨우 낙오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문제는 중장기 전략 방향과 대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영역별 ESG를 관리 수준은 SK하이닉스도 우수했다. 하지만 중장기 비전하에 그러한 활동을 한다는 소위 “why”에 대한 설명과 그 활동들의 성과를 외부 이해관계자, 특히 투자자가 원하는 수준에 맞추어 전달하는 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ESG는 투자자를 움직임으로써 기업을 움직이고, 기업이 창출하는 임팩트를 통해 지구 환경을 보존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결국, ESG를 포함한 기업 활동이 투자자, 자산운용사, ESG 평가기관들에 적시에 정확히 전달되지 못하면 의미가 퇴색된다. 기업이 존속하는 데에 필요한 지지를 투자자에게서 충분히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중장기 비전과 의지를 갖고 추진하지 않을 경우, 전사적인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나고 경영진이 바뀌면서 중요한 과제가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는 의도했던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다.

쿄토의 정서 이후 각국 정부들의 행태에서 보였던 것처럼, 기후변화 대응처럼 거대한 프로젝트는 결의할 때에는 훌륭한 정당성에 기꺼이 동의하기는 쉽지만, 전체 조직이 장기 비전을 갖고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흐지부지되기 쉽다. SK하이닉스에서도 전사 관점에서의 전략과 부서별 ESG 활동의 코디네이션, 외부 이해관계자 대상 One Voice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ESG의 가장 기본은 누가 ESG 정보를 요구하는지와 어떤 정보를 요구하는지이다. (별도 표에 정리된 것처럼) E 영역은 성과를 만들기는 어려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반면, S는 영역 자체도 넓고 어느 이슈를 먼저 다뤄야 하는지도 산업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기업의 규모와 ESG 현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경우, 자체적인 안전/보건과 인권/노동 이슈뿐 아니라 협력사의 ESG 리스크 관리까지도 S 영역에서 다뤄져야 하는 이슈이다. 또 G는 E와 S가 잘 수행되는지를 “Oversee(관리감독)”하고 투자자와 기업 간의 소통이 잘 되도록 하는 이사회의 구성과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 기업들이 대체로 G가 약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대기업들도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많은 대기업은 ESG 전담 조직을 만들고 이제라도 글로벌 금융사들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읽으며 조금이라도 빠르게 ESG 수준을 개선하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또 기후변화 대응이나 인권/노동 이슈 대응 등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업의 기회가 되고 고용 창출의 기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신규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가 다르더라도, ESG의 바람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협업과 신규 사업의 기회를 찾기 위한 노력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초반에 설명한 것처럼, ESG는 갑자기 불어온 바람도 아니고 잠깐 불다 말 바람도 아니다. 이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UN과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15년 이상을 공들여 준비해 왔다. 이제는 자본주의가 환경과 사회를 위해 멋진 임팩트를 만들 시점이 된 것이다.


— 참고 —

“기업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은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반면 이를 경시하는 기업들은 실패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밀레니얼 세대’가 부상하면서 더욱 명확한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전체 노동인구의 35%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그들이 일하는 회사는 물론 투자할 때도 기업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좋은 인력을 채용하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사회적 목적’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63%의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이 우선시해야 할 목적으로 ‘이익 창출’보다 ‘사회적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요소는 밀레니얼 세대와 혹은 그보다 더 넓은 세대들이 취업을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를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우리 사회의 핵심 노동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미 24조 달러의 자금이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옮겨 갔습니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 환경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가 매우 결정적인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2019년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 서한 중 일부]

[표. ESG 영역별 주요 이슈]


[필자 소개]

Monitor Group(전략컨설팅사), SK텔레콤, 행복나눔재단을 거쳐 현재 SK하이닉스에 있다. 2007년에 CSR에 입문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였고, 2012년부터 행복나눔재단에서 임팩트 투자와 육성을 하는 등 소셜 섹터에 집중했다. 2018년에는 SK하이닉스로 옮겨와서 사회적가치와 지속경영 업무를 병행하다가 현재 ESG에 올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