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기업인 수기

말똥구리가 부활을 의미하는 이유

나는 멋진 사업가면서 인정받는 사회인이다.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차도 있다.

한 때는 그랬다.

대구에서 활발한 사업과 많은 사회단체 요직을 맡으며 인정받는 사회인으로 생활해왔다. 그러나 초심의 집중력을 잃고 사업의 실패, 지방선거 낙선 등의 여파로 최악의 건강상태가 되어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듯 울진을 찾게 되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주변 누구에게도 울진행을 알리지 않았으며, 이름까지 개명하였다.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으나 내가 처한 현실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혼자 하는 운동뿐이여서 매일 매일을 운동만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나의 권유로 자활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곧 대구로 갈 것이란 생각에 잠시 머물 요량으로 2011년 자활사업에 참여하였다. 가장 처음 주거복지 사업단을 거쳐 택배사업단이 만들어지면서 정부양곡배송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 이력의 가정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시작 이였다.

나는 첫 월급을 받은 날을 잊을 수 가 없다. 첫 월급 75만원을 받던 그날 하염없이 회환의 눈물을 쏟았다. 지나간 많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으며 인생의 허망함과 비통함이 함께 밀려들었다. 어쩌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 것 임을 인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훌륭하고 잘난 가장이 아닌 성실하고 열정이 있는 가장이 되고자 다짐하며 자활에서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을 만들기로 다짐하였다. 자활센터로부터 2013년 초 양곡택배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자활기업 창업제의를 받고 깊은 고심 끝에 사회적 기업으로의 창업을 결심하였다.

㈜말똥구리라는 자활기업을 창업한 후 사회적 기업 인증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기업을 이끌어 갔으나 매출은 부진하였고, 도저히 2명으로는 사업을 진행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1인당 100만원 밖에 안 되는 인건비조차 양곡배송만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어 이중으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2명이 넓은 울진의 전역에 양곡을 배송하기에는 너무나도 빠듯했고 배송료가 얼마 되지 않아 수익은 거의 없었다. 이런식의 수익구조로는 운영이 너무나도 어려워 다른 사업을 병행해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인원이 모자라고, 인원을 충당하기에는 매출액이 너무나 미약한 진퇴양난의 상황이였다. 임시방편으로 자활센터의 인원을 요청하였지만 그마저도 지원이 어려워 주주총회를 열어 폐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천우신조인지 그간 지나는 틈에 6~7회 방문하며 영업을 하였던 맑은물사업소에서 저주조청소 공사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자활센터의 지원을 받지 않고 사업을 진행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일용직을 고용하여 어렵게 공사를 마무리 했다. 2014년 7월부터는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위해 낮에는 배송일과 영업을, 밤에는 사회적 기업 관련 업무를 혼자 봐야했다.

컴맹인 관계로 마을 정보이용실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전산업무를 배워야 했으며 매출, 영업수익도 올려야했고 사회서비스 제공 실적도 쌓아야 했기에 매일 늦은 시간까지 혼자서 바쁠 수밖에 없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문서를 만들고 지우기를 수십 회를 되풀이하며 어렵게 요건을 갖춰 서류를 접수하였고 그해 11월 지역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 받았다.

2014년 10월 한수원(주) 사업자지원사업 공고를 보고 중증장애 가정과 446개의 마을회관에 소독을 제공하는 사업을 기획하여 사업비 1억 5천여만원을 신청하였다. 모두가 지명도 없는 회사가 신청해봐야 선정되지 않는다며 괜한 일을 한다고 신청자체를 만류하였으나, 다부진 각오로 완벽한 제안서를 만듦에 그치지 않고 8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소독필요성에 대한 청원서를 마을주민 350명에게 받아 제출하였다.

(주)말똥구리가 기반을 잡아, 지역일자리를 창출 할 수 있도록 사업자지원사업 선정에 힘을 실어 주십시오”라며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지극한 정성과 원이 닿아서인지 우리 회사가 사업자로 지정되었다는 통지를 받게 되었고 노력이 배신하지 않았구나 싶어 내 자신을 처음으로 칭찬해보고 싶어졌다.

누가 인생이 쉽게 흘러가면 재미없다고 하였는가?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소독사업이 연말 해킹사고로 인해 시작 자체가 늦어지게 되었고, 일자리 창출사업 공고도 지연되면서 전문교육을 위해 조기 채용한 직원들의 임금 지급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대표들의 급여를 반납하고 매일매일 가슴을 졸이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는법! 이번에도 맑은물사업소 저수조 청소 공사가 3개월이나 빨리 착공지시가 떨어지게 되었고 그 덕에 큰 시름을 덜게 되어 회사운영을 정상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점차 회사가 기틀을 잡아가면서 지역사회공헌 사업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저소득층 및 마을회관 등에 1,200여건(1억5천만원)의 무료소독사업을 제공하였고, 울진노인회와는‘일자리 창출 MOU’를 체결하여 노인 15명을 채용하였다. 또한 장애인 시설인 인덕사랑마을과도 MOU를 체결하여 연 7회 무료소독을 제공하고 있는 등 이제 지역주민의 위한 기업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사업의 다양화와 부가사업을 확대시킬 요량으로 ㈜에코유, 팽이제로 홈케어와 같은 전문기업과 지사체결도 맺어 울진지역 외 강원 동해시, 태백시, 삼척시까지 사업영역을 넓혀 용역계약을 체결하였으며 더불어 교육지청, 학교 교육시설에도 시설관리 계약을 체결하여 소독사업을 확대시켰다.  소독을 뛰어넘어 에어컨청소, 수도, 보일러 청소 등의 기술을 직원들과 함께  배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기업이 나가야할 방향을 찾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을 하였다고 하늘이 주신 선물인지 2016년에 우연치 않게 LH공사 주거환경개선 사업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몇 군데 집수리 공사장을 견학하며 어깨 넘어 기술을 본 것이 전부였는데 어쩌겠는가? 시작한 사업, 죽기를 작정하고 현장에 뛰어 들었다. 공사일정을 맞추지 못해 사유서를 작성하여야 했고, 휴일을 반납하며 현장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게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11월 18일 취약계층 집수리 방수 및 페인트 공사장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였다. CT촬영으로 확인된 결과 척추날개뼈 4개 갈비뼈5개(4,5,6,7,8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게 되었다. 울진군의료원에 입원을 하였으나 오래 입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였다. 당장 4일후 맑은물사업소 침전지, 배수장 청소가 시작되는데 현장사정을 아는 직원이 없었다. 내가 나가야만 공사를 할 수 있었기에 병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3일간 입원 후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보조기와 지팡이에 의지한채 수일간 현장을 지휘하면서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렵게나마 LH공사 주거환경개선사업도 많은 것을 겪고 배우며 순조로이 마칠 수가 있었으며 그 결과 2017년 LH공사 주거환경개선사업에서 울진군(135가구) 뿐만아니라 영양군(37가구)의 사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희망나르미 협동조합과 경북 사회적기업 종합상사 협동조합에 출자하여 정회원의 자격을 갖추었고 드디어 2016년 11월에는 인증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었다.

2017년 울진군에서 야심차게 준공한「십이령 옛길 보부상 주막촌」운영 입찰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낙찰되어 지역명소를 운영하는 영광도 함께 하게 되었다. 보부상바지게 막걸리라는 소규모 주류제조업 허가를 받고 상표를 등록하고 전통주를 제조하여 관광 울진 먹거리 홍보에도 앞장서고 있다.

우리 기업의 형태는 사회적기업, 여성기업, 자활기업으로 지금 우리 회사는 창업당시 2명의 직원, 7,340만원의 매출액으로 시작하여 2018년 28명의 직원과 매출예상액 17억원으로 크게 성장해 왔다.


성장의 뒤안길엔 말 못한 아픔도 많았다. 전문적인 교육까지 시켜놓으니 무단결근과 주취업무, 일방적인 사직 등 직원들의 잦은 이직과 근무태도 등을 이겨내는데 긴 시간 나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내가 절망의 긴 늪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힘든 현실을 극복할 수 있 는 힘은 아들의 건승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하시는 노모(89세)의 간절한 정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오늘도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지금도 새로운 대안사업을 고민하며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말똥구리는 부활이다.개인적으로는 회사를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사회복지사, 화물운송종사, 심리상담사, 위생점검관리사 그리고 위해생물 방제사 초경량 비행장치(드론)조종자, 건축도장 기능사, AIB인증자격, 우리술 제조관리사(3급)자격,산림교육전문가(숲해설가)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또한 산업용,농업용 드론방제사업과 가축위생방역사업자 등록도 마쳐 농어촌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와 고효율 경제성확보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방제전문가심화교육과정 수료, 대경대 곤충요리 전문가 과정수료, 리큐르(약술)전문가 자격수료, 발효효소 전문가 자격수료,한국가양주 연구소를 졸업하는등 회사운영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거쳤다.


(주)말똥구리 김경조 대표